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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무아(無我) 사상

joodiary 2025. 3. 9. 22:31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은 “나”라는 것이 독립적으로 항상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라는 의미야.

1. “내가 없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
불교에서 “내가 없다”(무아)고 할 때, 이 말은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니야.
대신 **“변하지 않는 고정된 ‘나’는 없다”**는 뜻이야.
• 우리 일반적인 생각: “나는 변하지 않는 하나의 존재다.”
• 불교의 가르침: “나는 끊임없이 변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즉, 나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여러 요소(조건)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2. 무아를 쉽게 이해하는 예시
✔ 장미꽃과 무아
• 장미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어.
• 물, 햇빛, 공기, 흙, 비료 등 수많은 조건이 모여야 장미가 존재할 수 있어.
• 만약 햇빛이 없다면? 물이 없다면? → 장미는 사라짐.

이처럼 ‘나’도 여러 조건이 모여서 형성된 것이지, 단독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야.

✔ 강물과 무아
• “한강의 물”을 생각해 보자.
• 강물은 늘 흐르고 변화해. 어제 본 한강과 오늘의 한강이 완전히 같을 수 없어.
• 하지만 우리는 강이 있다고 생각해.
• 마찬가지로, “나”도 계속 변하지만, 마치 고정된 실체처럼 착각하고 있을 뿐이야.

3. 불교가 왜 ‘무아’를 강조할까?
과거 브라흐만교(힌두교의 전신)는 **“아트만(Ātman, 영혼)은 영원하다”**고 가르쳤어.
즉, **“태어나도, 죽어도, 본질적인 나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야.

하지만 부처님은 이걸 부정했어.
• “고정된 나”라는 개념이 사람을 얽매이게 한다.
• “내 본질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카스트 제도(신분제)를 유지하는 논리가 됨.
•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사람은 변하고, 신분도 변할 수 있어.

그래서 부처님은 “무아”를 가르쳐서 사람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주려고 했어.
• “내가 정해진 운명을 따라야 한다” → ❌ 틀린 생각
• “나는 변화할 수 있고,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 → ✅ 올바른 이해

4. “내가 없으면, 삶은 무슨 의미가 있어?”
“나”가 없다는 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 뜻은 아니야.
오히려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노력할 수 있어.

✔ 예를 들어,
• “나는 원래 게으른 사람이야.” (고정된 나) ❌
• “나는 노력하면 부지런해질 수 있어!” (변하는 나) ✅

이처럼, 무아(無我) 사상은 “우리는 변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는 거야.
즉, 고정된 실체가 없기에, 우리는 인생을 더 자유롭게 만들어 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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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라고 해서 ‘내가 없다’고 한다. 엄연히 내가 현재 살아 존재하는데 불교에서는 어떻게 없다고 하는가?
‘나’라는 존재는 연기의 산물
고정된 내가 없다는 의미
내가 주인공이 되어
인생을 만들어 나갈 수 있어
A 불교에서 ‘내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나’의 실존을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불교에서의 ‘나’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나의 의미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없다는 무아의 참뜻은 ‘나’라는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나라는 실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 아닌 무수한 객체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존재하는 비실체적인 연기(緣起)의 산물이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장미의 존재는 물·태양·바람·구름·흙·광물질·거름 등 장미가 아닌 것들에 의해 자라고 존재하듯이 나도 ‘내가 아닌 것’들의 모임으로 구성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대 인도에서는 브라흐만교의 교설에 의해 아트만(Ātman, 我)사상이 보편화 되어 있었습니다.
‘아’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산스크리트어인 아트만을 살펴보면, ‘숨’이나 ‘호흡의 들어가고 나옴’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생기·본체·영혼·자아’를 의미합니다.
즉, 숨 쉬는 자아·주체를 말하며‘자기 동일체로서의 집착’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 나의 동일성은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불변의 본질·본체·실체와 같은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이 아트만사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무아설을 세우셨습니다. 참으로 혁명적인 가르침입니다. 사실 불교의 근본사상인 무상과 윤회는 브라흐만교와 자이나교에서도 있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이 무아사상만은 부처님의 독창적이면서도 핵심적인 가르침입니다.
브라흐만들은 카스트제도의 유지를 위해 각자 신분은 영원히 변치 않고 계승된다는 대중세뇌의 개념으로 ‘자아(아트만)사상’을 내세웠습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단호히 부정하셨습니다.
지금 만져지는 내 몸이 있고 눈 뜨고 생각하는 내가 있으나 본질을 꿰뚫어 보면 이것은 인연 따라 모여지고 형성된 것일 뿐 영원한 실체는 없다는 것입니다.
카스트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을 속이는 아트만사상을 무아사상이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처럼 불교의 무아사상은 대부분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대중들에게 환영받고 희망과 해방감을 가져다주는 혁신적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과연 지금 숨 쉬고 있는 내가 내일 숨 쉬고 있는 나와 동일할까?
평생 전혀 변하지 않고 파괴되지 않아서 심지어 죽은 다음에도 영원히 나를 나이게끔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내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정된 내가 없으므로 내 인생을 내가 주인공이 되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신문3579호/2020년5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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