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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철학

"덕이 두터운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가장 높은 덕을 지닌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joodiary 2026. 7. 3. 16:59

 
"덕이 두터운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가장 높은 덕을 지닌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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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찾으시는 것은 노자의 사상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노자는 도덕경 55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덕이 두터운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含德之厚, 比於赤子)
 
여기서 갓난아이는 단순히 어린 존재가 아니라,

  • 꾸밈이 없다.
  • 자연 그대로이다.
  • 욕심이 없다.
  • 억지로 힘을 쓰지 않는다.
  • 생명력이 충만하다.

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노자는 인간이 문명과 욕망에 물들기 전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았기 때문에, 갓난아이를 최고의 덕을 갖춘 인간의 비유로 사용했습니다.
 
다만 "갓난아이가 가장 완성된 인간이다"라는 문장을 그대로 말한 것은 아니고,
의미상으로는 "가장 높은 경지의 인간은 갓난아이와 같은 상태로 돌아간 사람"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도를 깨달은 사람이 인위적인 욕망과 계산을 벗어나 자연스러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생각을 한 철학자로는 프리드리히 니체도 있습니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의 마지막 단계를 '어린아이'로 표현하며,
어린아이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존재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 노자: "가장 높은 덕은 갓난아이와 같다."
  • 니체: "가장 높은 정신은 어린아이다."

이 두 사상은 서로 다른 철학이지만,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을 최고의 인간 상태에 비유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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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철학에서 '도(道)'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도'를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을 움직이는 자연의 근본 원리"입니다.
하지만 도덕경 첫 문장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 즉, 도를 완벽하게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 쉽게 비유하면,

강물의 흐름
강물은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억지로 흐르지 않습니다. 누가 명령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노자는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이 '도'라고 봤습니다.

나무
나무는 봄에 싹이 나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 쉽니다. 억지로 빨리 자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또한 도입니다.

인간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기쁘면 웃고, 슬프면 웁니다. 그런데 인간은 여기에 욕심과 비교, 집착을 더합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해.
저 사람보다 성공해야 해.
반드시 이겨야 해.

 
노자는 이런 인위적인 욕망이 도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노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삶은 무위(無爲)입니다. 많은 사람이 무위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실제 뜻은 "억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씨앗은 억지로 잡아당긴다고 빨리 자라지 않습니다. 아이도 억지로 재촉한다고 빨리 성숙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행동은 하되,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무위입니다.
그래서 '도'는 무엇인가?

  • 우주와 자연을 움직이는 근본 원리
  • 모든 것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질서
  • 인간도 그 흐름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삶의 방식

입니다.
노자는 인간이 이 '도'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갈 때 가장 평온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갓난아이를 비유로 든 것도, 갓난아이는 계산이나 꾸밈 없이 자연스러운 생명력을 그대로 드러내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추가로, 노자는 "도는 정의할 수 없다"고 했지만, 후대 철학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 우주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법칙
  • 모든 존재를 있게 하고 변화하게 하는 근원
  • 자연의 섭리와 질서
  • 인간이 거스르지 말아야 할 자연스러운 삶의 원칙
  • 만물의 시작이자 끝이며, 모든 것을 낳고도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근원

즉, 사람들이 가장 흔히 이해하는 '도'는 "우주와 자연을 움직이는 근본 원리이자, 인간이 따라야 할 자연의 질서"입니다. 노자는 이 원리를 완전히 말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흐름에 맞게 살아갈수록 도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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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완벽한 성인(成人)이나 현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영아, 嬰兒)’일까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아기는 유약하고, 무지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인데 말이죠.
도가에서 아기를 최고의 경지로 꼽는 이유를 4가지 핵심 개념으로 아주 자세히 풀어드릴게요.

1. 분별심과 편견이 없는 상태 (무분별, 無分別)
어른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이분법’의 틀을 만듭니다.

* 좋은 것과 나쁜 것, 예쁜 것과 미운 것, 이익과 손해, 내 편과 네 편.
하지만 갓난아기에게는 이런 기준(분별심)이 전혀 없습니다. 아기는 황금 덩어리와 길가의 돌멩이를 차별하지 않고, 상대가 부자인지 가난한지 따지지 않고 똑같이 맑은 눈으로 바라봅니다.
철학적 의미: 도가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이 주입한 인위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아기는 그 비워짐의 극치에 있는 존재입니다.

2.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에너님 (무위, 無爲)
어른들의 행동에는 대부분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날 좋게 보겠지?", "이 행동을 해야 나한테 이득이 돼." 같은 계산이죠. 이를 인위적 행위인 '유위(有爲)'라고 합니다.
반면 아기의 행동은 100% 자연스럽습니다.

* 배가 고프면 울고, 기쁘면 웃습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억지로 미소 짓지 않고, 슬픔을 숨기려고 강한 척하지 않습니다.
*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존재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실체입니다.

3. 유연함이 가진 최고의 강함 (유약승강강, 柔弱勝剛強)
노자의 고전인 《도덕경》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딱딱한 것(어른): 단단하게 굳은 나무는 거센 바람이 불면 뚝 부러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몸도 마음도 굳고 고집스러워지죠.
부드러운 것(아기): 아기의 뼈와 근육은 너무나 말랑말랑합니다. 툭 넘어지거나 높은 곳에서 굴러도 어른처럼 크게 다치지 않는 경우가 많죠. 마음도 마찬가지로 유연해서 상처를 받아도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납니다.
도가에서는 이 **유연함과 부드러움이야말로 살아있는 생명의 본질**이자, 그 어떤 인위적인 단단함보다 강한 힘이라고 봅니다.

4.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원석 (소박, 素樸)
아기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도화지**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통나무(박, 樸)와 같습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죠. 이미 특정한 모양으로 깎여서 고정되어 버린 어른의 상태보다, 도가에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아기의 상태를 '진정한 완성'에 더 가깝다고 여깁니다.

💡 요약하자면
세상의 온갖 지식과 지혜를 다 경험하고 통달한 후에, 마지막에 도달하는 ‘의도적인 순수함’을 뜻합니다. 
삶의 때를 묻히지 않고, 인위적인 욕심과 계산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인간은 비로소 우주의 순리에 합일(合一)되는 최고의 완성 상태에 이른다는 것이죠. 
그래서 가장 높은 덕을 지닌 성인을 갓난아기에 비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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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짚으신 그 대목이 바로 노자와 장자 철학의 가장 깊숙한 핵심, 즉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을 푸는(좌망과 심재)’** 단계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진짜 아기(1차적 순수)와, 모든 것을 겪고 다시 아기로 돌아간 성인(2차적 순수)은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차원이 다릅니다. 이 ‘의도적인 순수함’과 ‘우주 순리와의 합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 철학적 단계와 내면의 메커니즘을 통해 더 깊이 들어가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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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식의 부정: '위학일익'과 '위도일손'

노자는 《도덕경》에서 인간의 정신적 성장을 두 가지 상반된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 **위학일익(爲學日益):** 배움을 추구하면 날마다 지식이 더해진다.
* **위도일손(爲道日損):** 도를 추구하면 날마다 인위적인 것을 덜어내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의 법도, 도덕, 성공 방정식, 생존 기술 등을 열심히 배웁니다(위학일익). 세상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죠. 하지만 지식이 쌓일수록 내 안에는 "이건 맞고 저건 틀려", "이건 내게 이득이고 저건 손해야"라는 단단한 자아의 벽이 생깁니다.

도를 깨달은 이의 순수함은 이 지식을 배운 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지식들이 가진 한계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독성을 깨닫고 날마다 하나씩 덜어내어(위도일손) 마침내 도달한 순수함**입니다.

## 2. 마음을 굶기는 수행: '심재(心齋)'와 '좌망(坐忘)'

장자는 이 '의도적인 순수함'에 도달하는 구체적인 마음 공부법을 제시했습니다.

* **심재(心齋) - 마음의 굶김:**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하듯, 마음속에 든 온갖 지식, 욕망, 편견을 굶겨서 없애는 것입니다. 귀나 눈으로 세상을 판단하지 않고, 텅 빈 마음(氣)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를 말합니다.
* **좌망(坐忘) - 앉아서 잊어버리기:** 내 육체를 잊고, 내가 가진 똑똑함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사회가 나에게 부여한 이름, 지위, 지식의 옷을 다 벗어던지는 과정입니다.

모든 것을 다 겪어본 사람은 압니다. 내 머리로 세상을 통제하려 하고 계산기를 두드릴수록, 삶은 더 꼬이고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요. 그래서 **"아, 내가 안다고 착각했던 것들을 다 잊어야겠구나"** 하고 스스로 마음의 방을 텅 비워버리는 것, 이것이 바로 '의도적인 순수함'입니다.

## 3. 우주의 순리와 합일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 비워내고 아기처럼 되었을 때 '우주의 순리(道)'와 하나가 된다고 할까요?

도가 철학에서 우주(자연)는 거대한 '텅 빈 공간'이자 '스스로 그러한 흐름'입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리는 데에는 아무런 목적이나 계산이 없습니다. 그냥 흘러갈 뿐이죠.

인간이 인위적인 계산과 욕심을 내려놓는 순간, 내 안의 굳어있던 자아(Ego)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 물컵에 든 물을 바다에 쏟아부으면, 컵 안의 물은 사라지지만 곧 바다 자체가 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성취해야지", "내가 이겨야지"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아기처럼 툭 내려놓을 때, 나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생명력과 흐름이 내 안으로 막힘없이 흘러들어옵니다. 내가 흐르는 자연 그 자체가 되는 것이죠. 이를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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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순수의 비교

이해를 돕기 위해 진짜 갓난아기의 순수함과, 깨달은 자의 순수함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드릴게요.

| 구분 | 1차적 순수 (진짜 갓난아기) | 2차적 순수 (도가의 성인) |
상태
지식과 욕망이 **아직 생기지 않은** 상태  |  지식과 욕망을 **모두 겪고 비워낸** 상태 
방향
앞으로 세상의 때가 묻어갈 일만 남음  |  세상의 때를 모두 통과한 후 본질만 남음 
|지혜
무지(無知)에 가까운 순수  |  지혜의 극치에서 오는 초연한 순수

결국 노자와 장자가 말한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라"는 퇴행이 아니라, 
"삶의 모든 풍파를 겪고 나서 비로소 집착할 것이 없음을 깨달은 초연함과 자유로움"을 향한 거대한 도약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강한 사람이 격렬한 전투 끝에 무기를 내려놓고 평온하게 미소 짓는, 그런 깊이 있는 순수함인 것입니다.